군대

내 인생 통틀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ROTC 임관유예자 동계훈련

조낙타 2022. 6. 2. 08:00

내 인생 통틀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ROTC 임관유예자 동계훈련이었다.

 

일반적으로 ROTC는 대학교 수업과 군사학 수업을 같이 듣고,

방학 때마다 여름에는 하계훈련, 겨울에는 동계훈련을 받게 된다. 

 

요즘에는 많이 변했다. 하계훈련도 3학년, 4학년 중 한 번만 선택해서 간다고 한다;;

라떼는말이야! 엉? 당연히 하계훈련 두 번 다 했다고! 

 

어쨌건 4학년 동계훈련까지 마치면 임관을 앞두게 되는데 학점에 문제가 생겨 졸업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임관식을 몇 일 앞두고 정말 충격적이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하게 쓰기로 하고,

 

 

 

학군단 3년차(?)..그러니까 대학교 5학년이 되었다. 

내 동기들은 이미 obc교육을 받으러 전부 떠난 상태였고 임관복이 아닌 학군단복을 다시 입게 될 줄이야,

 

슬퍼도 어쩔수가 없었다. 요즘은 임관 유예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다행히도 그런 제도가 있어서 훈육관님, 학군단장님께 보고했고 임관 유예 심사가 올라간 후 통과되어 후배들과 같이 임관하는 입장이 되었다.

 

군사학 수업을 들을 필요도 없었고 방학때 하계훈련도 추가로 받을 필요가 없어서 1년 늦었지만 그래도 임관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전국의 임관유예자들을 모아서 임관 전 마지막 동계훈련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성남에 있는 학생중앙군사학교로 임관유예자들이 모였다. 약 70명 정도 되었고 35명씩 2개의 생활관으로 나뉘었다. 

 

 

 

세상에.. 나만 불행하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인서울의 모 대학교 동기는 졸업 전 토익점수 800점 미달로 졸업을 하지 못했었는데 제일 불쌍했다.

어떤 동기는 개인 사정이 있어서, 어떤 동기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유예를 하는 등 온갖 사유가 많았다. 

 

모두들 특이케이스라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2주간의 동계훈련은 무난하게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우리도 나름 짬이 있으니까 처음에는 당당했는데.. 

 

보통 대위급 훈육관이 교육을 하지만 중령급이 와서 우리를 감시했다. 훈육 수준이 아니라 거의 반 죽일 정도의 기세로 우리를 괴롭혔다.

새벽 5시 강제기상. 1년 차 후배들이 모두 자고 있는 사이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군장을 메고 연병장 1시간을 걸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완전 무장에 귀도리까지 했지만 귀를 제외한 모든 얼굴 살결이 꽝꽝 얼었다. 눈에는 고드름이 맺혔고 머리에는 항상 김이 났다.

 

 

 

군장을 메다가 어깨가 탈골된 동기가 발생(근데 다시 뼈를 맞추더라ㅋㅋㅋ)

행군하다가 쓰러진 동기도 있었다;;

 

이대로 계속 행군하다가는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몇 명의 친구들은 군장 속 모포와 야삽 등을 모두 빼버렸다. 걸려서 죽으나 걸어가다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마인드였고 그 이후 우리는 모두 살기 위해 신문지를 구겨 넣었다ㅠㅠ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발이 푹푹 빠지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눈을 밟고 계속 산을 탔다. 

기억나는 건 오로지 추위와 배고픔. 세상에 그렇게 추운 겨울이 없었다. 배도 얼마나 고팠는지 살도 쭉쭉 빠졌고 매 식사시간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허겁지겁 먹어댔다. 하루는 뼈다귀 해장국이 나왔는데 뼈다귀만 식판 하나에 더 담아서 미친 듯이 먹었었다.(임관유예자들은 밥도 따로 먹고 배식도 자율배식이었다.. 우리를 통제할 rotc선배가 없었으므로)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 행군을 워낙 많이 해서 2주라는 시간이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

그만큼 우리 임관유예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똘똘 뭉쳤고 훈련이 끝나서도 따로 만나서 술잔을 기울였다. 

 

 

 

47기로 이미 이름이 박혀있지만 당시 48기와 함께 임관했다ㅎㅎ 

항상 몇 기냐고 물으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47.5기라고 말한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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