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ROTC장교로 임관했지만 단기복무 제대한 이유

조낙타 2022. 6. 21. 07:20

내가 단기복무로 빨리 제대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소위로 자대 배치받은 후 중대장과 대대장 면담 시 가장 처음 듣는 질문은 "장기복무를 생각하고 있는가?"이다. 아무래도 단기 자원보다는 장기복무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평정 점수를 더 높게 준다던지 어드밴티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시절에는 장기로 남아있을지, 단기로 빠르게 전역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고민을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점점 부대에 적응할 수록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고 전역을 선택했다.

단기복무로 제대한 가장 큰 이유는 절대 바뀔 수 없는 군대 내부의 시스템이다. 너무 거창하게 말했지만 쉽게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보겠다.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게 종이를 그렇게 좋아한다. 프린트기는 불이 날 정도로 돌아가는데 상급자에게 보고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정형화된 양식에 맞춰 문서를 작성한다. 글자는 몇 포인트, 간격은 얼마, 어떤 글씨는 굵게. 용어도 군대 용어를 사용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그 용어를 대체할 용어를 찾느라 몇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수차례 반복해서 보고하는 동안 A4용지를 뽑고 또 뽑는다. 

나무에게 미안해 질 정도로 실컷 A4용지를 사용하고 나면 보고가 끝이 난다. 그러면 파일철에 끼워 넣고 보관을 하는데 그렇게 보관된 서류함만 수십 개가 쌓인다. 파쇄나 폐기는 하지 않고 10년이 넘도록 보관만 하는 서류들이 넘쳐난다. 흰 종이가 누렇게 될 때까지.

두 번째로 쓸데없는 지침이 너무 많이 내려온다. 사단장이 바뀌거나 상급부대의 지침이 바뀌면 갑자기 이상한 문화를 실천하자며 강제로 병사들에게 동작과 구호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내가 있었던 당시 가장 어이없었던 일은 "웃음박수"였다. 말 그대로 웃음박수 10초간 실시!라고 외치면 다들 와하하하 억지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손바닥 불나도록 치는 것인데 나중에 치다 보면 어이가 없어서 찐 웃음이 나왔다. 무려 6개월 동안 강제 웃음을 지어서 입과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까라면 까! 문화이다. 군대 아니랄까 봐 대대장이 시키면 못하더라도 하는 시늉까지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된 판단인데 거기서 반박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중대장들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주임원사가 나서서 한마디 거들면 겨우겨우 듣는 척, 결국 모든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사이 장교와 부사관의 오묘한 신경전도 정말 많았고 싸움도 많이 일어났다. 

 

중대장이 되면 병사들 관리를 집중적으로 하게 되는데 변수가 너무 많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던지 휴가를 마치고 미복귀 하거나 훈련 도중 큰 사고가 일어나 부상을 당하는 등.. 그런 것들이 전부 간부가 병사 관리를 잘못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운이 좋은 중대장 밑에서는 병사들이 아무 문제없이 잘 지냈고 운이 나쁜 중대장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간부들의 일탈도 문제가 되었다. 술을 먹고 민간인과 싸운다거나 한겨울에 술 취해 걷다가 동사한 경우도 있었으며 인형 기계를 부수거나 물건을 훔치는 등 범죄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각종 비리들도 많았다. 양심을 버린 간부가 이렇게 많았나 실망했다. (물론 훌륭한 간부들이 훨씬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