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행군을 좋아하는 이유와 행군시 각종 꿀팁

조낙타 2022. 6. 22. 20:19

내가 행군을 좋아하는 이유는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하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간행군을 좋아한다. 변태 같지만 행군이 모든 훈련을 통틀어서 가장 쉬웠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갈 때에도 항상 80L 배낭을 메고 사방을 돌아다닌다. 구글 지도 하나만 켜면 두려울 게 없다ㅎㅎ 

처음 행군을 했을때는 학군단 기초군사훈련. 20km를 걸었는데 너무 긴장을 많이 했다. 다들 처음이기도 하고 전투화는 잘 적응되어 편한지, 군장의 짐도 재점검하면서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기기에 바빴다. 

점점 걸을수록 긴장이 풀리면서 주변의 시야도 잘 보였다. 도로 옆의 논밭에서 나는 풀내음, 자동차가 쌩쌩 지나가고 민간인 한 두 명이 우리를 쳐다볼 때 눈을 마주쳤다. "와 군인 아저씨다!" 외치는 아이에게 "우리 아저씨 아니야!"라고 소리쳤다.

(걸렸으면 훈육관에게 뚜드려 맞았을거다) 

첫 번째 휴식을 취할 때 벌써 휴식을 취한다고? 걸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싶었다. 사실 행군은 낙오자가 없이 모두가 결승선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개인의 체력이 다르기 때문에 엄청나게 강행군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행군은 운도 크게 작용한다. 제일 앞에서 출발하느냐와 제일 뒤에서 출발하느냐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항상 뒷 열 동기들은 걷는 내내 빠른 걸음을 유지해야 하거나 가끔씩 뛰어야 할 정도로 간격이 많이 벌어진다. 이걸 무슨 법칙이라고 해야 할까. 말로 표현 못할 이상한 법칙이다. 

제일 앞 동기들은 동일한 속도로 천천히 걷는다. 그러다가 잠깐 뒤를 돌아보면 아주 멀리 뒤에서 동기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잠깐씩 정지를 하지 않으면 격차가 더더욱 벌어진다. 그래서 운도 중요하다. 

 

먹을 것이 있으면 알아서 몰래 잘 챙겨놓아야 한다. 부피가 큰 음료수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음식은 비추천. 초콜릿이나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과자류, 젤리도 좋고 입 안에 넣어서 우물우물 오래 즐길 수 있는 군것질거리가 좋다. 한때 유행했던 포카리스웨트 가루를 가지고 와서 물에 타 먹는 동기들도 많았다. 

행군할 때 가장 중요한 팁 두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전투화가 본인의 발에 착 달라붙어 잘 맞아야 한다. 운동화 안에 아주 작은 모래알이 들어간 상태에서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작은 존재 하나가 나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을. 전투화도 너무 느슨하면 발목이 꺾일 수 있다. 걷다가 발목 돌아가 휘청이는 사람을 어림잡아 50명은 본 것 같다. 발이 꺾이면 다치기도 쉽기 때문에 너무 헐렁하면 위험하다. 

그렇다고 타이트하게 꽉 묶는 것도 좋지 않다. 발목에 피가 통하지 않아 감각이 점점 무뎌질 수 있다. 그래서 너무 헐렁하지도 않고, 꽉 끼지도 않게 본인의 기준에 적당하게 전투화 끈을 묶는 감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는 군장이다. 어깨끈을 잘 맞춰놓아서 군장을 멜 때 밑으로 처지지 않도록 잘 조여주어야 한다. 허리 지지대에 나의 허리가 착 달라붙어야 하고 약간 구부정하게 앞으로 몸을 숙였을 때 거북이의 등딱지처럼 밀착이 되어 있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내 몸 전체로 보았을 때 내려가 있다면 무게가 계속 밑으로 눌리기 때문에 어깨가 버티지 못하고 아작 날 수 있다. 

행군하기 전날 미리 짐을 싸는데 모포나 포단, 전투복을 집어넣고 미리 몇 번 메어보아야 한다. 끈조절을 미세하게 해 놓고 조금 걸어보기도 해서 최적의 군장 세팅을 맞춰 놓으면 한결 편할 것이다. 

군장에서 가장 무거우면서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은 물품은 구형 야삽이었다. 접히지도 않고 아주 길쭉한 것이 쇳덩어리는 얼마나 무거운지. 군장에 끼워넣기도 힘들고 무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투박했는데 몰래 빼면 티도 많이 나서 억지로 집어넣는 애증의 물건이었다. 그 외에 무게를 줄이기 위한 각종 시도들이 많았다. 포단은 가볍지만 모포는 상당히 무거운 편이기 때문에 모포 2개를 빼거나 신문지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고 휴지, 세면도구 같은 잡동사니 물품도 두고 떠났다. 

몰래 물건을 빼면 어디에 숨겨야 하는데 관물대 위에 놓거나 TV 뒤에 숨기는 등 걸리면 죽을지라도 행군하면서 죽고 싶지는 않았나보다ㅋㅋ 

 

평발은 행군시 가장 고통받는 불운의 발이기 때문에 행군을 매우 싫어할 것이다. 내 발은 축복받은 발이라 그런지 다른 동기들은 전부 물집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했다. 심지어 회복도 빨라서 행군이 끝나고도 바로 잘 돌아다녔고 다른 동기들은 모두 절뚝이가 되었다. 

행군을 지겹고 힘든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긴 시간이라 여긴다면 좀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예비군 아저씨라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했나? 지금 다시 행군하라고 하면 물론 못한다고 찡찡대겠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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